오늘부터 마태복음 강해 설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어려운 이름들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이 우리 입에 익숙해지고 귀에 익숙해지고 또 생각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들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 이름들이 쭉 기록되어진 것은 그냥 의미 없이 나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이름들 속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신앙의 여정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의미 있게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마태라고 하는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제자입니다. 이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세리(稅吏)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고 계셨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세리라고 하면 로마의 앞잡이입니다. 민족 앞에서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죄인을 대표하는 표현이 세리들, 창녀들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떤 기질의 사람일까? 자기의 이익을 민족의 이익보다도, 공동체의 이익보다도 우선시하는 사람이고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리고 남들의 손가락질에 굴하지 않고 나는 세금만 많이 챙겨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대단히 실리주의적입니다. 따라서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리가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이 마태입니다. 이 사람의 눈으로 본 예수님은 어떠할 것인가? 이 사람의 눈으로 본 복음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대단히 재미있는 그런 관점일 수가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었던 세리는 실적에 따라서 자기의 수익이 달라집니다. 자기가 세금을 많이 거둬들일수록 자기 벌이가 많아지고, 적게 거둬들이면 자기 벌이가 변변찮게 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 민족들이 볼 때는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손가락질 그 시대의 죄인의 대명사가 될 정도인데도 자기의 직업을 선택했다면, 복음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싶으면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세리였을 것입니다. 즉, 세리의 안목으로 봐도 복음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고 여긴 겁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신앙 경륜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유대교와 연속선상에 있는 신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걸 전하고 싶은 거에요. 유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가교 역할을 한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유대교의 모든 아브라함, 다윗, 그 계보 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시다. 이것을 연속선상에서 전파해야 하겠다는 강한 동기유발이 되었다는 거에요. 마태는 초대 교회 시대에 이 복음을 유대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그런 복음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쉽게 전달되어지는 이 복음으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유대공동체들을 선교 전진기지로 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서두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시작되어집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조상이죠.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 가셔서 당시 아브람에게 찾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이렇게 했어요. 그 때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할 때 순종함으로 자기가 머물러 있던 위치를 떠났다는 거에요. 본토를 떠나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그랬습니다.
본토는 자신이 머물러 있었던 터입니다. 바로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던 삶의 방편들의 역사, 전통, 관습이 삶의 위치가 있던 곳이 바로 본토 친척 아비집입니다. 또 아비 집은 자기 육신의 생명의 근원되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라 하는 지시해 놓은 땅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이 지시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로 가라 하는 갈 곳이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믿고 순종함으로 거길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시작이고, 신앙의 시작이에요. 만약 이 신뢰함이 없으면 결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을 겁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위대함을 낳는 자', '위대함의 아비'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생명의 아비', '민족의 아비'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믿음의 조상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민족의 근원이 되는 사람은 아브라함이에요. 근원적인 존재에요. 아브라함이 없으면 유대인들은 없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시작해서 모든 히브리인들이 나왔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없다 그러면 아무도 없는 거에요. 그것은 근본적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태초를 의미합니다.그러니까 너희 신앙이 믿음의 근원 되는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 의 최초의 왕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사람의 뜻으로 세워진 왕이에요. 사울은 위대한 왕입니다. 특출한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의 뜻으로 세워진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왕입니다. 아무도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찾아서 양 치는 아이 중에 이새의 아들 중에 한 명을, 가장 어리고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그 아들을 불러서 하나님이 왕으로 세운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왕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나라를 세운 임금이에요. 그러니까 한 씨앗에서부터 시작해서 밭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나라를 이루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다윗은 나라를 이룬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다윗이 만들었고 그 나라의 의는 아브라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생략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없으면 모든 믿음의 후손들이 없습니다. 다윗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는 거에요.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 이것은 한 믿음의 존재,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말합니다. 즉, 한 개인과 공동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그로 인해서 펼쳐지는 신앙의 세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다는 겁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요.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을 때 이러한 기준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태복음의 비유, 사건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세계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펼쳐지는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이것만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이 안목으로만 보자는 거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장 1절으로 시작해서 28장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발견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 1장 1절이라고 하는 안경을 껴야 됩니다. 이것을 끼고 마태복음을 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이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서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중요한 부분, 민족의 아비 아브라함. 그 다음에 나라의 왕 다윗. 그 모든 계보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연결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는 그 세계를 펼치기 위해서 기록되어진. 이 기준에 맞추어서 마태복음은 펼쳐질 것이고, 읽어야 될 것이고, 해석해야 할 것이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 서론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